<사례>
“그 업무는 원래 제가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었어요. 우리 팀에 담당자가 당시 공석이어서 잠깐 대신했을 뿐이었어요. 새로운 담당자가 왔으면 그 사람에게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사 과정에서 만난 A씨는 해당 사업의 총괄 책임자가 자신이 아니었는데, 당시 사업보고서 작성을 할 때 담당자가 퇴사를 하는 바람에 잠시 업무를 대신 해달라는 상사의 지시를 수용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담당자가 왔으니, 업무를 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부서장이 “A씨에게는 그런 걸 정할 권리가 없어”라고 말하고 사무실을 나가버린 뒤, 사람들 앞에서 문제제기한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모욕감과 수치심 때문에 괴롭다고 했습니다.
부서장이 A씨에게 한 발언은 다른 직원들의 진술로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A씨가 업무 분장을 다시 요청한 것도 업무 과부하로 인한 어려움 때문이라는 점 역시 동료들도 모두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수긍하는 상황이었지요. 부서장 또한 자신이 했던 발언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새로 온 담당자는 A씨보다 선임인 것도 맞고 내년에 해당 사업을 총괄할 예정인 것은 맞지만, 올해 진행된 사업에 대하여는 상세히 아는 바가 없어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A씨가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직원들 앞에서 반발하는 바람에 언성을 높여 권리 운운했던 것도 맞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업무 지시를 괴롭힘이라고 신고하는 것은 상사라는 죄밖에 더 있냐"라며 억울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고충 상담을 했던 B씨도 업무 고충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괴롭힘 상담을 하고 나서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회사에 공식적으로 조사를 해달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갑작스럽게 저에게 내년부터 모두가 기피하는 민원업무를 담당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그것도 제가 행위자로 지목한 상사가요. 상담을 한 것만으로도 이런 업무적 보복이 들어오는데, 제가 어떻게 신고를 할 수 있겠습니까? 더 큰 불이익이 올까봐 두렵습니다.”
비밀유지가 관건인 고충 상담 내용이 행위 지목자에게 유출이 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과 함께 다시 연락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B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지에 대해 최종 의사 결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B가 상담을 했다는 것도, 어떠한 내용으로 고충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고충상담원만 아는 일이니, 상사가 보복으로 그런 지시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판단>
업무의 과부하로 인한 직장 내 스트레스는 일터에서의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상황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자신에게 업무가 과중되어 있고 그로 인하여 야근도 잦고 정시 퇴근도 점점 어려워지고, 심지어 식사를 거르고 마감에 맞춰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인 이 상황이 너무 괴롭습니다. 더구나 연초, 업무 분장을 할 때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를 맡아 1년을 감당할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출근할 마음이 안 생깁니다. 평소에도 관계가 좋지 않았던 자신에게 고의적으로 기피 업무를 맡긴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상사의 업무 지시에 대한 불합리성, 불공평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로 인하여 일상의 공간이라할 수 있는 직장에서의 괴로움이 이어지다 보면, 이것이야말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가 질문해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는 해당 지시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나는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됩니다. 즉, 상사의 지시가 정당한 업무지시명령권에 해당하는지, 그와 같은 지시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비하하거나 비난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이 동반되었는지, 업무상 필요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도를 가지고 업무 분장을 다시 짠 것은 아닌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이 사례들은 서울시 인권침해 결정례집에 실린 사례들과 유사한 사례입니다. 첫 번째 사례의 경우에는 “당시 피해자가 자신에게 배정된 업무에 대하여 업무 분장을 다시 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발생한 일로, 해당 업무상 지시에 대해 피해자가 불만을 느꼈을 수 있으나 이는 부서장의 업무명령권에 속하는 사안으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기 어렵다(20신청-17,20 병합사건, 2020년)”고 하여 괴롭힘이 아니라고 보았고, 두 번째 사례의 경우에는 “업무 분장은 부서 내 직원 구성 등을 고려하여 과장이 행사하는 고유권한으로 특정인을 괴롭힘 목적으로 부당하게 업무를 변경하였다거나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하였다는 증거가 없으며, 부서 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업무 분장을 시행한 것으로 판단(18의뢰-5 사건, 2019년)”하였습니다.
해당 지시를 하는 과정에서 강압이나 강요의 언사 또는 위협적, 모욕적 표현을 한 것이 아니라면 업무 분장에 대한 권한이 있는 상사의 지시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판단하고, 상사의 발언이 다소 부적절하긴 하나 일회적 발언에 그치는 경우에는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조사 결과 해당 업무 분장이 정당한 이유없이 상당기간 동안 근로계약서상 업무와 무관한 일을 지시한 것이라거나 부당하게 떠넘긴 정황이 확인이 된다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법적 판단의 영역이 아닌 영역에서 이 상황을 재구성해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맡게 된 업무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하는 업무가 아니라 업무상 필요성에 따라 수행하여야 하는 업무로서 최소한 납득이 되고, 양해를 구하는 과정의 유무에 수용성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담당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애로사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사의 지시라는 점이 확인되는 구간이 있었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 달랐을까요? 상사에 대한 신뢰가 미치는 영향 즉 상사의 리더십은 바로 이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것이 되겠지요. 불만을 제기하는 부하직원을 아쉽게 생각하기 전에, 한번쯤은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윤진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공인노무사
출처 :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212067724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