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A는 2021년 4월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웹디자이너로, 올해 42세의 워킹맘입니다. 입사한 지 이제 1년이 갓 넘었는데, 얼마 전부터 출근길에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달리는 차창을 열고 숨을 몰아쉬는 날이 생겼습니다. 가끔 머리에 쥐가 나는 듯하고 왼쪽 귀도 찌릿찌릿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증상을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이유도 몰랐는데, 최근 B와 이야기만 나누고 나면, 심장이 쿵쿵대고 얼굴이 상기되고 호흡이 가빠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B는 A보다 2살 어리지만, 올해 근속 13년인 차장으로 회사 초창기 멤버입니다. 이 회사는 웹사이트 디자인과 기업의 로고 디자인, 웹자보 등 홍보물을 주로 디자인하는 웹디자인 회사로, A가 속한 부서의 직원들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 주를 이루며 여성이 90%입니다.
육아로 인한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프리랜서이지만 나름대로 경력을 쌓아 경력직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 A는 입사 첫날부터 두 살 어린 상사의 무례한 태도에 당황했습니다. 한두달 지내는 동안에 문제가 되는 일을 일으키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B차장은 A에게 ‘이유없이 사람을 미워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언행을 하곤 했습니다.
부서 내에는 정기적인 회의 자리도 없었고, 늘 차장이 시키는대로 일을 하고 직원들을 개인적으로 불러 수정하라고 지시하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됐습니다. B는 오로지 자기 기분과 감정대로 사람들을 대하는데, 어린 직원들이 잘못을 하여 지적을 할 때에도 마치 초등학생을 나무라듯이 말하고, 늘 날선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A에게는 항상 화난 사람처럼 말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하곤 했습니다. B차장과 업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표정은 항상 벌레 씹어 먹는 표정이거나 썩소를 날리면서 A를 무시하는 말투가 일상이었습니다.
입사 초반에는 나이가 어린 동료들에게 B차장에 대해 묻기도 곤란해서 넘어가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조직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오랜만이기도 한 상황에서, A가 조직에 먼저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했고, 이미 자리잡힌 조직의 분위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B차장이 다른 부서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프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공황장애 증상을 검색해보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면 괴롭힘으로 신고라도 할텐데, 도대체 왜 사람을 대할 때 자기 기분대로 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신체적으로도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괴로운데, 직장 상사로 인하여 이런 피해가 발생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매일매일 기분이 태도가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상사, 직원들 모두가 상사의 눈치를 보고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숨죽여 일하게 만드는 상사를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는 없는 걸까요?
<판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책과 지위가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기대치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대치와 어긋나게 예의없이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상사를 만나면 '갑질상사'라고 말하곤 합니다. 고압적이거나 폭력적인 성향의 상사로 인하여 마음이 힘들고 괴로움이 쌓여가면서 혹시 이런 언행이 직장 내 괴롭힘에는 해당되지 않나라고 자문하기도 하지요. 자기 기분에 따라 사람들을 대하는 상사로 인하여 업무 환경도 나빠지고, 심하면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면서 업무 집중도도 떨어지고, 고통이 심화되어 계속 일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은 문제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인정이 되어야 합니다. 상사의 짜증이나, 배려없는 행동, 무례와 무시, 비아냥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면 우울증이나 적응장애가 생길 법도 합니다. 그러나 A에게 정신적․신체적 증상이 나타났다는 결과만으로 곧바로 괴롭힘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례’와 ‘무시’라는 것은 B의 언행에 대한 A의 주관적 느낌과 인상이며, 객관적 사실에 대한 ‘평가’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A가 그렇게 느낀 당시 상황과 경위, 구체적인 표현이나 행동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업무상 적정범위 여부를 따져보아야만 합니다.
무례나 무시, 모욕, 조롱, 비아냥, 시비, 비하 등은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그와 같은 피해 호소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 B차장이 업무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감정섞인 태도를 보인 것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노동청에 진정사건으로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는 상사의 ‘폭언’이 많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상사의 지속적인 무례한 언행은 직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식을 은폐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하는 직원은 조직이 자신과의 계약을 어겼다고 간주하거나 조직이 직원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상사에 대하여 아무런 개선 조치 없이 방치하는 것 역시 조직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조직 전체에 대한 앙갚음 행위로서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숨기고 조직에 기여하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상사를 향하여 직접적인 행동을 못하는 상황에서 하급자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한 셈입니다.
‘공정’과 ‘정의’는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이를 정도의 언행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적절한 리더십에 대한 개선 조치는 조직의 책임입니다.
박윤진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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