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과장은 글로벌 IT솔루션회사의 한국지사(이하 G사) 영업부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여성 직원입니다. 원래 다른 지역에서 회사를 다녔었으나, 타지로 발령이 난 남편과 함께하기 위해 연고가 없는 곳에 소재한 G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A과장은 G사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조직의 높은 기대를 받고 있었으며, 차장 승진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A과장의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남편과 이혼하여 다섯 살 딸아이를 혼자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혼 전에는 A과장이 저녁에 일정이 생길 경우 남편이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을 맡았으나, 이혼 이후에는 아이의 하원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업무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퇴근하는 일정으로 6개월 가량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업무시간 내에 모든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 위하여 A과장은 주변 직원들과의 가벼운 담소도 사치스러울 만큼 집중하여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부서 내의 회식 등에는 참여치 못하였습니다.
A과장은 민감한 가정사를 동료 직원들에게 언급하기 부담스러워 했고, 경력직으로 입사한 A과장에게 먼저 다가와 사생활을 물어볼만한 동기들 또한 없었습니다. 다만, A과장을 입사 시부터 챙겨온 소속 영업부 부장님께는 개인사를 얘기 드리고 친분을 쌓았습니다.
한편, A과장이 속한 영업부에는 입사 2개월 된 B 신입 수습사원이 있었습니다. 높은 스펙으로 원하던 직장에 입사한 포부가 큰 직원이었으며, 3개월 차 본채용 평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본채용 평가에는 부서원들의 평가도 반영되는 구조였습니다. B사원의 눈에 비친 A과장은 본인의 업무는 칼같이 처리하나, 후배들에 대한 교육이나 소통 등 자리에는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A과장이 회식에도 참여치 않고 다 같이 하는 야근에서도 항상 열외하는 등 입사한 지 2개월이 지났음에도 말 한번 제대로 섞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영업부의 부서원들이 해외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단체로 참석해야 할 일정이 생겼습니다. 부서의 업무를 총괄해야하는 부장과, 부장의 배려로 대기인력으로 남은 A과장, 해외 세미나 인원 등록 이후 입사한 B사원 셋만 국내에 남고, 나머지 부서원들은 출국하였습니다.
국내에 남아서 대기하던 A과장은 세미나에 참석한 선임 부서원으로부터 퇴근시간 직전에 A과장 담당 서비스에 관심을 갖는 현지회사가 있어, 바이어 브리핑이 급히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현지시간과의 시차로 인하여 당일 저녁에 부서 내 DB를 활용한 기초 제안서 작업을 진행해야 되는 사안이었습니다.
A과장은 해당 업무를 부장님에게 인계할 경우 본인의 업무를 미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곧 있을 차장 승진에도 불리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업무 이해가 부족한 B사원과 같이하기보다는 혼자 야근하고 사원B가 아이의 하원을 돕는 게 더 효율적이고 B의 퇴근시간도 당겨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A과장은 B사원에게 가서 “미안하지만 OO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줄래요?”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B사원은 저녁에 개인적인 약속이 있었으나, 선임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약속을 다음날로 미루고 A과장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다음날 저녁, A과장은 또 다시 퇴근시간 직전에 해외에 있는 선임 부서원으로부터 계약이 성사 단계로 발전하여 계약 관련 서류를 급히 작성해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제보다 야근시간이 길어질 것 같고 아이가 B사원을 잘 따르는 것 같아, A과장은 다시 한 번 B사원에게 가서 “미안하지만 어제처럼 아이를 저희 집에 데려다 주고 조금 돌봐줄래요?”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B사원은 오늘로 미룬 개인적인 약속을 선임의 사적부탁으로 또 깨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역량을 펼치기 위하여 들어온 회사에서 보모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지만 수습 본채용 평가가 얼마 남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거절치 못하고 A과장의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몇 주 후, G사 전사에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를 조사하는 익명 설문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본채용이 된 B사원은 새로 입사할 후배 직원들이 본인과 같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상사 자녀의 하원을 대신 해주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 설문에 기재하였습니다. A과장은 사람 대 사람으로 한 부탁으로서, 우위를 이용하여 한 행위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A과장의 행위는 우위성을 이용하여 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봐야 할까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야 할 것이 요구됩니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이에 대하여 “피해 근로자가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가 인정되어야 하며, 행위자가 이러한 상태를 이용해야 함”이라 기재하고 있습니다.
한편,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예시로서 “반복적으로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등 인간관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부탁의 수준을 넘어 행해지는 사적 용무 지시”를 들고 있고, “행위자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 행위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되었다면 인정된다”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기준에 비추어 사안을 보건대, 과장급 직원 A가 신입사원 B보다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갖고 있음은 이견의 소지가 적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A의 부탁이 이러한 우위성을 ‘이용’한 행위인지에 대하여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안에서 A과장은 본인과 친분이 있는 부장님을 통해 고민을 나눈 것이 아니라, 친분이 없는 신입사원에게 위 내용을 직접 부탁하였습니다. 비록 표현은 부탁조였으나 평가를 앞둔 신입사원은 이를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고, A과장은 이러한 상태를 내심 이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A과장의 부탁은 1회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요구사항으로 재차 이루어 졌습니다. 어린이집에 연락을 하거나 하원도우미나 아이돌봄서비스 등을 알아보지 않고 상호관계가 형성되어있지 않은 후배에게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거절키 힘든 부탁을 하였습니다. 비록 A과장이 B사원을 괴롭힐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B사원 입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느낄 수 있을 만한 사안으로 보입니다.
이재민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파트너노무사
출처 :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203222618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