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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유규창_직장괴롭힘: 기업 대응 및 HR 관점
2019-03-11 16:02:58

직장괴롭힘: 기업 대응 및 HR 관점


➊ 문제의식

직장괴롭힘의 폐해가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땅콩회항, 운전사에 대한 갑질 등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해당 기업은 물론 한국 사회와 기업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기업의 경제적 손실이 매년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있을 만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기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직장괴롭힘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사회적인 관심이 늘어나면서 학술 연구도 점차 축적돼가고 있다.
본 기고에서는 기업의 관점에서 직장괴롭힘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그림에서 보듯이 원인으로는 제도, 조직문화 그리고 리더십 등 세 요인이 있다. 세 요인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직장괴롭힘을 증대시키고 이는 조직의 건강성을 해치고 성과를 저하시킨다. 직장괴롭힘을 해소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➋ 직장괴롭힘의 원인


직장괴롭힘의 세 가지 원인으로 첫째는 '제도로서 조직의 공식적인 규율'이 있다. 조직에서 공식화된 인사 및 복리후생, 근로시간과 관련된 규정,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을 말한다. 둘째는 '조직문화'로서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구성원들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주는 공통된 가치를 말한다. 셋째, '리더십'은 조직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역량과 태도를 말한다.

가. 제 도

제도는 공식적으로 조직 내 구성원들의 행동을 제한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제도의 틀 내에서 행동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다. 제도는 처음 만들 때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작용하기도 한다. 사람을 위해 제도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사람이 제도를 위해 존재하듯 돼 버린다. 한국 기업에서 직장괴롭힘 현상이 가중된 것도 한국 특유의 인사제도에 책임이 있다.

① 속인주의 HR
한국 기업들의 인사제도는 서구와 달리 속인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속인주의는 빠른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으나 저성장-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속인주의 HR은 인사의 기준을 수행하는 일에 두지 않고 그 사람의 속인적 특징, 예를 들어, 학력, 남녀, 근속연수, 나이 등에 두는 것을 말한다.
속인주의 HR이 잘 작동하면 집단적 공동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규모 공채를 통한 직원선발이다. 예를 들어 매년 같은 기수로 선발된 직원들끼리 단체로 집합교육을 받고 이를 통해 단합하고 애사심도 커진다. 반면 경력으로 입사한 사원들이 늘어나면 공채로 선발된 직원들과의 괴리감이 커지게 된다. 직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만들어지고 이는 결국 직장괴롭힘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지면 한계로 자세히 다룰 수 없으나 채용, 평가, 보상, 승진, 육성, 퇴직 등 모든 면에서 속인주의 HR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② 공정하지 않은 평가제도
속인주의 HR 부작용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제도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직무주의와 달리 속인주의 HR에서는 직원 각자가 하는 일에 대한 역할과 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그때부터 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맡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본인의 적성과 관심사와는 무관하게 회사에서 반강제로 일을 맡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고 하는 방식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것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회사의 성장과 함께 다양하게 발생하는 변화된 업무에 적응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잘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들은 역할 갈등이 생기게 된다. 자신의 적성이나 기대치와 전혀 무관한 일을 하면 의욕도 떨어지고 성과도 잘 나지 않는다. 전통적 역할에 익숙해진 상사들은 제도의 문제는 간과하고 세대 차이나 정신력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상대평가와 연결되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자신의 뜻과 관계없는 일을 하게 돼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낮은 평가를 받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저성과자로 전락해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나. 조직 문화

제도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면, 조직문화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구성원의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조직문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한 방향으로 습관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소위 '갑질'도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조직문화가 원인이다. 

① 권위주의 문화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점차 서구화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개인주의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하나의 조직에서도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상명하달의 권위주의 조직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능력이 있는 인재보다 말 잘 듣는 사람을 선호하게 된다. 즉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신세대의 개인주의 문화가 전통과 조화를 이룬다면 상호보완이 되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권한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엿장수' 맘대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신세대들은 손쉽게 튀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결국 어느새 직장내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돼버린다.

② 다양성의 불인정
성숙한 조직문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다. 반면 한국 기업의 문화는 아직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다양한 가치와 생각이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문화는 직장괴롭힘을 가중시킨다.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는 한국 속담은 우리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생각이 남 다르고 창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으로 낙인찍는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저성과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원래 저성과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일의 할당이나 평가과정에서 처음부터 불이익을 주고 자연스럽게 저성과자로 전락한다. 

다. 리더십

제도와 문화를 실제로 현장에서 실행하고 구성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리더다. 제도와 문화가 잘못되어도 리더가 리더십을 잘 발휘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역으로 제도와 문화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조직의 리더가 문제라면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한국 기업에서 리더십이 강조되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아직은 관리자들이 충분한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직장괴롭힘과 같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① 리더십 역량의 부족
무엇보다 상명하달 문화 속에서 직장생활을 해왔던 관리자들이 리더십 역량을 축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기업들이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교육훈련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으나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 훌륭한 리더십은 구성원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리더들은 부하직원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고 자신을 추종하는 직원에 대해서만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견해가 다른 직원을 포용하고 이러한 다른 견해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화시키는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은 내 편이 아닌 구성원들은 괴롭힘이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② 리더의 관점 부재
리더십은 역량도 중요하지만 관점도 중요하다. 리더의 관점이란 구성원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대하는가 하는 점이다. McGregor는 XY이론에서 부하직원들을 게으르고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관리자들을 X리더라고 부르고, 반면 부하직원들이 본질적으로 책임이 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관리자들을 Y리더라고 분류했다. X의 관점을 가진 리더는 직원들을 신뢰하지 않고, 관리방식도 당근과 채찍을 활용한다. 이러한 X리더 밑에 있는 부하들은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반면 Y의 관점을 가진 리더는 직원들을 믿고 자발성을 유도한다. 관리방식도 칭찬, 격려, 경청, 코칭을 활용한다. 아직까지 한국의 많은 관리자들이 Y리더의 관점이 부재하다. X리더가 많은 조직은 구성원들이 리더의 눈치를 보게 되고 사내정치를 많이 하게 된다. 편가르기, 줄서기가 만연하게 되고, 직장괴롭힘은 이들의 부산물이다.


➌ 직장괴롭힘의 결과

한국 기업에서 직장괴롭힘 현상이 증가하게 된 원인으로 제도, 문화, 리더십 측면에서 각각 살펴보았다. 직장괴롭힘이 증가하면 조직의 건강성을 상실하게 된다. 사람도 건강을 잃으면 매사 의욕을 갖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조직이 건강성을 잃게 되면 추구하고 있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직장괴롭힘이 만연하게 되면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은 행복할 수 없다. 비단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갖게 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생산성이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 특히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앞서 나갔던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고 근면과 성실로 무장한 직원들이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 도전정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야 한다. 직장괴롭힘이 생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창의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➍ 직장괴롭힘의 해결방안

한국 기업에서 직장괴롭힘 현상이 늘어나는 것은 제도, 문화, 리더십과 현재의 경영환경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저성장-고령화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현재의 경영환경은 새로운 제도, 문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직장괴롭힘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넓게 보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국가적으로는 법률의 정비와 정책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영자의 의식과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는 본 연구의 초점인 기업 내로 국한하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노사 공동의 노력이다. 직장괴롭힘 문제는 노사가 공동으로 협력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사용자는 근로자의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이나 노사협의회 등의 대표기구를 통해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한 사용자의 진정성 있는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둘째, 직무주의 인사관리의 도입이다. 이제 속인주의 HR의 폐단은 기업이나 근로자 모두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일을 찾고 이로부터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 그리고 학력이나 나이 또는 근속연수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의 범위와 중요성에 따라 처우를 받는 것이 직무주의 인사관리다. 직장괴롭힘 문제는 차별의 또 다른 명칭이다. 
셋째, 조직 건강의 주기적 점검이다. 사람들도 신체적-정신적인 건강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이상 징후를 사전에 발견하고 조기에 치료하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조건이다.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신체적-정신적 건강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상 징후를 조기 발견해야 한다. 직장괴롭힘은 이상 징후의 상징적 현상이다.
넷째, 리더의 역량 강화다. 조직에서 리더는 최고경영자인 CEO부터 일선에서 활동하는 팀장까지 이어져 있다. 모든 리더들이 중요하다.
하지만 특히 시급한 것은 일선 팀장의 리더십 역량 강화다. 한국 기업들은 일을 잘하는 직원을 승진시켜서 팀장에 보임한다. 그러나 훌륭한 글로벌 기업들은 리더십이 있는 직원을 승진시킨다. 일을 잘하는 것과 리더십과는 별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을 갖춘 팀장을 승진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다시 임원이 되고 나아가 최고경영자가 되기 때문이다. 조직의 밑바탕이 되는 팀장의 리더십이 잘 갖춰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다.
다섯째, 민감성(Awareness)에 대한 지속적 교육이다. 민감성은 내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생각과 가치관도 존중받아야 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타인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려면 자신에 대해서도 민감성(Self-Awareness)을 갖춰야 한다.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일민족, 집단주의, 획일주의 등으로 스스로를 정의해 왔다. 한 방향으로 결집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선진국으로 넘어가는데 한계가 된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 요건이다.





유규창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한국윤리경영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