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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6개월, 실효성 제고하려면…
2020-02-17 09:55:03

[리포트] 실효성 논란에 빠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 최은혜 기자

· 2020-02-07


 노동청의 적극 행정 필요 VS 노조의 참여로 극복 가능
결국은 ‘입법 만능주의’의 문제


20대 국회는 노동의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법안을 여럿 통과시켰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다. 국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다루기 시작한 건 2013년이다.

19대 국회에서 김춘진 의원, 한정애 의원, 이인영 의원, 심상정 의원 등이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을 일부 개정하는 방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20대 국회에 들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제화하기 위한 활발한 논의를 지속했다. 결국 2018년 12월 27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은 2019년 7월 16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올해 1월 16일부터 시행 중이다. 그러나 시행 6개월 만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둘러싸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처벌 규정이 거의 없어 직장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뭣 하러 만들었나”


지난해 6월, 문경휴게소(양평 방향)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조합원 약 40명의 규모로 시작한 노동조합은 1년도 안 돼 현재 10여 명만 남았다. 한국노총 연합노련 문경휴게소노동조합(위원장 정호욱, 이하 노조)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는데, 오히려 노조만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우리가 노조를 (지난해) 6월에 만들었어요. 그리고 8월에 점장이 새로 왔어요. 새로운 점장이 오면서 괴롭힘이 시작된 거죠. 아침에 전 직원을 불러서 조회한다고 2시간, 조회 마치면 각 팀 팀장들 붙잡고 몇 시간씩 얘기하고. 물품 발주를 본사에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또 이윤이 안 남기 때문에 더 저렴한 업체를 찾으라는 등 업무가 과중했어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정호욱 노조 위원장은 “스트레스가 극심해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회상했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진 조합원도 생겼다.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조합원이 많이 생겼죠. 기사식당 쪽을 담당하는 팀장의 경우, 2달 동안 입원할 정도였으니까 되게 심각한 상황인 거죠. 결국 그 팀장은 병가를 냈어요. 2달 입원하고, 2달 동안 더 쉬어야 했는데, 회사에서 병가를 승인하지 않았어요. 입원 기간이 2달이면 2달만 쉬고 출근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죠. 입원 기간만 병가로 받아주겠다는 거예요. 노조에서 ‘그럼 휴직계를 내줘라’고 맞섰는데, 휴직계 승인도 안 나왔죠. 결국 2달의 병가가 끝나고 복귀했는데, 기사식당 팀장한테 설거지를 하라고 지시한 거예요. 식당 팀장은 직원 위생관리, 식자재 관리, 메뉴 구성 등의 업무를 담당해야 하거든요? 설거지는 따로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요. 팀장한테 갑자기 본인이 담당해야 할 업무가 아닌 설거지 담당으로 업무 분담을 바꾸는 건 부당하잖아요. 그래서 회사에 항의하고 고용노동청도 찾아갔죠.”


결국, 노조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다”며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영주지청에 진정을 넣었다. 영주지청에서는 회사에 자체 조사를 지시했다. 결론은 “직장 내 괴롭힘은 없다”였다. 정호욱 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뭣 하러 만들었냐”며 억울해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있으니 자신들의 괴로움이 해결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정호욱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조합원은 통원치료를 위해 연차를 냈지만, “일주일 전에 연차를 신청하지 않아 연차를 승인해줄 수 없다”는 회사의 입장 때문에 무단결근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징계위원회에서 ‘근태 불량’으로 정호욱 위원장을 포함한 노조 간부 6명이 해고됐다.


문경휴게소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모음 측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고, 피해당사자와 가해 추정자 모두와 얘기를 나눴다”며 “정당한 업무지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근로감독관에게도 해당 내용을 통보했고, 근로감독관 역시 정당한 업무지시로 판단했다고도 덧붙였다. 병가, 연차 승인에서도 “취업규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절차대로 병가나 연차를 신청하도록 요청한 것”이라며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승인이 안 났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 돼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는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정호욱 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희가 영주지청을 4번이나 찾아갔어요. 영주지청 근로감독관에게 “우리가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피해를 호소하는데, 노동청에서 직접 조사를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습니다. 근데 근로감독관은 “우리가 조사할 영역이 아니다. 회사에서 성실하게 조사했다고 한다”고 답했어요. 그리고 또 그러더라고요. 괴롭힘이 인정된다고 해도 노동청에서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고. 이럴 거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뭣 하러 만든 거예요?”


신고해도 제자리 …
노동자가 기댈 곳은 노동청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고 6개월 동안 법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9월, 국회에서는 한정애 의원실과 이정미 의원실의 주관으로 ‘사례를 통해 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의미와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용우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제재조치가 없어 사업장에서 안 지키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며 “사측이 해결 주체인 것도 우려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6개월 동안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1,320건을 살펴본 결과, 조치의무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용기 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만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직장갑질 119 운영위원은 “일단 괴롭힘 행위자가 사용자이거나 사용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경우,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사용자가 조치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원청회사가 괴롭힐 경우에는 노동청에 직접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노동청의 권한이 명시되지 않았다”며 “노동자가 노동청을 찾아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데, 근로감독관이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필요에 따라 근로감독관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문경휴게소의 사례에서도 노동청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노조는 회사의 조사 결과에 대해 노동청에 이의를 제기했다. 주식회사 모음은 “조사 결과를 노동청에 알린 후, 노동청에서 재조사를 요구하거나 노동청에서 직접 조사를 하러 나온 적은 없다”고 답했다.

박점규 운영위원은 “당장 법을 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이나 지침 변경 등의 방식으로 실효성 제고를 해야 한다”면서도 “궁극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하고, 노동청이 직접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벌만이 답일까?
노조의 역할이 중요


문강분 노무법인 행복한일연구소 대표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그동안 많은 법에서 수렴하지 못했던 정신적 고통으로까지 고통의 범위가 확장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종속노동’에서 ‘시민노동’으로의 선언이라는 의의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처벌 규정이 거의 없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그 많은 괴로움을 다 규정해서 근로감독관이 어떻게 다 처벌할 수 있냐”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가 먼저 직장 내의 괴롭힘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사업장 내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괴롭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노사협의회 안건이나 단체협약 안건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강분 대표노무사는 “내 직장에서 내가, 내 동료가 괴로운 것을 어떻게 나라에만 다 정의해달라고 할 수 있느냐”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본질은 자율주의다. 노조가 먼저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강분 대표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사회·경제·문화적 환경에서 조직과 구성원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며 “입법을 통해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법(‘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연구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자율, 피해자 구제, 예방 이렇게 세 가지”라며 취업규칙을 언급했다.


“근로기준법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포괄적으로 정의했다고 하지만, 그건 굉장히 자세하게 정의한 거예요. 구체적인 열거는 각 사업장에서 스스로 해야죠. 처벌을 위해 법률 자체에 직장 내 괴롭힘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기 시작하면 법에 열거하지 않은 괴롭힘이 또 나타날 겁니다. 또 각 사업장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까 산업별, 사업장별 특성을 고려한 괴롭힘 정의를 위해서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취업규칙으로 정의해야죠.”


지난 6월, ILO 100주년 총회에서는 제190호 협약,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을 제거하기 위한 협약’을 채택했다. ILO 제190호 협약 역시 “근로자대표와 사용자가 협의해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직장 정책을 채택하고 실행할 것”과 “근로자대표의 참여로 위험성을 확인하고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위험을 평가하고 예방·통제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물론 우려할 지점도 존재한다. 문성덕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지난 12월, 한국노총에서 진행된 ‘직장 내 괴롭힘과 노사관계’ 토론회에서 “현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ILO 제190호 협약과 달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대응 조치를 마련하고 운영하는 데에 노조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성덕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측에서 은폐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조사 및 조치 과정에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조사위원회를 취업규칙에 명시할 경우, 조사위원을 노사 동수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법을 둘러싸고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처벌을 위한 규정 강화가 아닌 노조의 참여를 통한 자율적 개선의 노력이 선행된 후, 실효성 논의를 다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 원문 보기 :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