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과 세계적인 경쟁의 격화 그리고 탈-진실 사회의 도래는 노사정 모두에게 직면한 현실이자 큰 도전이다. 우리나라는 저성장기에 접어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으로 양극화된 노동시장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성장 동력을 일궈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돼 각자 바라보는 사실과 해법의 공통지대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극단화된 가운데, 노사관계 또한 대결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가 주도하는 해법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일터의 고통은 심화되고 있다.
아직도 세계 최악의 산재사망률을 벗어나지 못하는 후진적 작업 현장이 온존하며, 스펙 없이는 취업이 어렵고, 학생이 이미 등록금 빛으로 채무자가 되며, 겨우 취업한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한 경쟁논리에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일터의 현실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직장이 전쟁터에요"라고 푸념하는 후배에게 "밖은 지옥이야"라고 절규하는 퇴직선배의 이야기가 사실인 셈이다.
UN과 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는 2010년 이래로 국가에 대한 평가를 경제적 지표에서 삶의 질과 행복기준을 설정했다. 우리나라는 모든 지표에서 동일한 경제규모 대비 평균을 훨씬 하회하는 '행복도 후진국'의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사회적 지지와 일과 삶 균형 부분에서 최하위로 조사돼 명실공히 가장 힘들고 불행한 나라로 공인받았다. 그런데 2016년 영국의 저명한 연구팀은 직장인의 행복지수와 생산성이 정비례하며, 특히 창의성 측면에서 행복한 근로자가 불행한 근로자에 비해 3배 우월하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1990년 이래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생산성이 하락해오고 있다는 OECD의 2016년 보고서도 이런 연구모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지옥의 한국, 전쟁 같은 일터로부터의 고통 그리고 낮은 생산성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무엇보다 불행한 일터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창의성은 발휘될 수 없기에 우리는 일터의 고통을 해소하고 보다 행복한 직장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적으로 육체적 안전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은 바로 직장괴롭힘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 왔다. 일찍이 유럽에서 시작된 직장괴롭힘에 대한 규율 노력은 미국과 호주 등으로 확산됐고,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에서 법안이 제출되는 한편 최근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과 지침제정 계획도 보도된 바 있다. 직장괴롭힘이야말로 미래의 노동에 가장 핵심적인 이슈라고 감히 단언하며, 현 단계는 이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된다.
필자는 지난해 5월 23일 직장괴롭힘 포럼을 시작해 현재까지 격월로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오고 있으며, 직장괴롭힘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동 이슈에 대한 문제해결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모두 최근 제2의 성희롱 논의로 불리우면서 활발히 법제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민간이 주도하는 미국의 직장괴롭힘 법제화에서 영감을 얻은 행보다.
직장괴롭힘을 규율하기 위한 논의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미국은 임의고용원리를 채택하고 있고, 민간전문가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내의 직장괴롭힘을 계기로 Gary Namie박사는 연구소를 설립해, 유럽의 선행적 논의 소개, 전국적 실태 조사 및 심각성의 알림과 예방 해결을 위한 민간운동을 넘어서 법제화를 주도하고 있다.
동료인 Yamada교수의 The Healthy Workplace Bill(HWB, 건강일터법안)은 지난 2004년 모델법으로 제시된 이래, 최근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몇몇 주에서는 관련법이 통과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핵심 내용은 사용자의 건강한 직장유지 책임을 명시한 점이다. 본 법안은 법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직장괴롭힘의 문제를 입법의 타당성여부, 입법의 근로자 보호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빈약한 사회보장시스템, 노동시장의 격차, 인사시스템 등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민간전문가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한 입법화과정은 절차적 시사성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건강일터법안의 추진과정과 특징, 이에 대한 비판을 통해 우리나라의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2. 미국의 직장괴롭힘 논의와 규율 한계
가. '소리 없이 번지는 전**' 직장괴롭힘과 구조적 원인
미국 최초의 전국적 조사를 연간시행하고 있는 Namie박사의 실태조사(2007년)는 다음과 같은 점을 보여준다. 미국 내 괴롭힘은 경기침체로 보다 심화됐고 만연하며, 현행고용법제에 의한 보호 불능상태 탓에 소리 없는 전**으로 번지고 있다. 법제미비 등에 따른 사용자의 소극적 대응이 핵심적 원인이다.
Yamada교수는 이러한 전**의 확산 현상은 일시적이라기보다 미국사업장의 특징에서 기인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①서비스 부문의 지속적 증가, ②글로벌 경영환경으로 인한 이윤의 축소와 업무의 과중화, ③비노조 사업장의 확산으로 인한 근로자 측의 교섭력 약화, ④여성근로자와 이민자 유입 등에 따른 근로자 구성 다양화 ⑤저숙련층에 대한 단순관리감독의 증가, ⑥노동시장 구조변화에 따른 비정형근로자 증가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나. 기존 법리에 의한 직장괴롭힘의 규율 한계와 입법필요성
직장괴롭힘의 개인과 조직의 영향에 대해 Yamada교수는 직장괴롭힘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적 보호방안을 제시해왔다. 그는 당시까지 직장괴롭힘과 관련한 법적 논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1960년대에 성장해 온 고용보호법제와 법리의 영역에 직장괴롭힘 개념을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우선 기존의 고용법리 하에서 불법행위법, 적대적 근로환경법리 및 노사관계법상 법리 등에 의한 대응가능성을 선보였다. 불법행위법상 정신적 가해의 법리(IIED, Intended Infliction of Emotional Distress)에 따른 괴롭힘 행위가 "극심하고 무자비"하며,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심대"함을 입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또 제정법상 고용차별법에서 금지하는 행위 즉 성, 인종, 장애에 근거해 고통을 당하거나 성희롱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 회사의 구조조정이나 저성과로 인한 해고로 인해 고통을 받은 경우 등 다양한 경우를 상정했다.
그러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성립요건이 엄격하고 미국의 고용자유의 법리가 엄연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제정법상의 고용차별이나 성희롱에 의한 고통 외의 다른 경우에는 사실상 구제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성희롱 판례로 발전돼 온 시민권법 제7편의 적대적 근로환경법리(Title VII Work Environment doctrine)나 장애자보호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경우 사용자에게 괴롭힘피해예방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징벌 등의 통합적 법리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비 '성적' 행위 또는 비장애에 대한 규율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노사관계법(NLRA, The National Labor Relations Act)의 경우 정당한 조합활동에는 문제 삼을 수 있으나, 조합원이 소수로 해당 법률의 적용이 배제되는 관리자나 비조합원 등에 대한 규율이 불가하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 등 직장괴롭힘의 실질적 규율에는 기존법제가 명백한 한계가 있고 실제로 피해자를 보호할 만한 실질적 장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직장괴롭힘의 개념을 적대적 근로환경에 중점을 두어 "근로자가 전형적으로 언어나 비언어적 또는 복합적 행위를 통해 다른 근로자나 근로자 집단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적대적 고용환경으로 침해당한 것"으로 정의하고, 법제화는 (1) 직장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피해근로자 보호, (2) 사업장 내 분쟁의 자체적 해결촉진, (3)피해자에 대한 금전보상과 원직에 대한 복직 보장, (4) 가해자재발방지를 위한 징벌조치의 조치가 마련되는 차원에서 규율해야 한다는 건강일터법안을 제안했다.
3. 건강일터법안의 확산과 비판
Yamada교수의 건강일터법안은 노동전문변호사와 학자들과 토론하고 다음 과정에서 수차례 개선안을 냈다. 동 법안은 Namie박사를 책임자로 법제화를 운동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과 동 법안의 확산과정 및 비판은 아래와 같다.
가. 법안의 주요 내용과 법제화
여기서 말하는 법안은 2013-14 회기에 메사추세추 주 의회에 제출된 법안의 수정 버전에 기반한 것으로, 크게 소송이유, 사용자 책임, 기타 주요 규정으로 이뤄져 있다.
법안이 제시하는 주된 소송 이유는 "근로자를 가학적인(Abusive) 근로 환경에 노출시키는 불법적 고용 관행"이다. 여기서 "가학적 근로 환경"이란 사용자나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려는 의도로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일으키는 행동을 말한다. 또한 단 한번의 행위는 가학성이 인정되지 않지만, 특별히 심각하고 끔찍한 행위라고 인정되면 가학적 기준에 부합한다. 그 기준은 시민권법 제7편 하에서 적대적 작업 환경을 규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1993년 결정의 "합리성"을 규정한 [Harris v. Forklift Systems, Inc [510 U.S. 19 (1993)]은 정신적 가해 불법행위의 엄격한 기준 요소인 "시민사회의 경계를 벗어나는 터무니없는"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폭력적 근로 환경에 대한 규정을 정신적 가해 불법행위 요소와 대법원 판결 기준 사이에서 찾고 있다.
한편 사용자와 가해자인 동료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동 법안은 "사용자는 근로자의 불법적 고용 관행에 대해 대리책임을 져야한다"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해 사용자책임을 선언하고 있다.
다만 사용자가 사용자는 문제예방을 위한 합리적 주의를 기울이고 문제시정을 위한 즉각적 조치를 취한 경우, 피해근로자가 사용자의 예방적 시정 조치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했을 때에 한해 사용자책임을 피할 수 있다. 나아가 사업장 내의 분쟁해결절차의 구축, 근로자 내부 불만제기, 중재와 조정 등의 절차를 마련해 사업장 내 ADR을 근로자가 선택하도록 하거나, 직장괴롭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근로자의 행위를 보장하는 한편, 이에 대한 사용자의 보복적 행위 금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동 법안은 불법행위 소송과 고용차별 청구에서 주어지는 손해배상에 따른 보상, 금지명령 구제, 징벌적 손해배상, 변호사 비용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손해배상에 대하여 일반적 불법행위 및 고용차별 소송에 준하는 보상을 예정하되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하여서는 소극적이다.
한편 직장괴롭힘에 대해 사용자가 (1) 근로자에 대해 적대적 고용행위가 근로자의 부족한 업무 성과나 위법행위 혹은 경제적 필요에 기인한 때 (2)) 합리적 업무능력평가에 의했을 때 (3) 불법적, 비윤리적 행동 가능성에 대해 사용자가 합리적 조사를 한 경우 해당 처우에 대한 사용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외 주요 규정으로서 가학적 근로환경에 대해 문제 되는 관련자의 해고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해당 청구권은 단지 개인적인 청구권으로서만 인정해 직장괴롭힘 구제를 위해 원고는 자신의 청구를 주의 1심 법원에 직접 제기하는 방식으로 구제절차가 진행되도록 규율하고 있다.
법제화 운동은 구체적 법제화되어 지금까지 이 법안은 24개 주에서 직장괴롭힘 금지 법안의 기초가 됐다. 2003년 캘리포니아는 건강한 일터 법안을 주 의회에 도입한 최초의 주가 되었으며, 바로 직후 오클라호마, 하와이, 메사츄세츠, 오레곤, 워싱턴 의회가 같은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2014년 미국 최초로 캘리포나아주와 테네시주에서 직장 내 대인 간 부당한 처우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직장괴롭힘관련 법률이 통과되었다. 이 법들은 주단위에서 포괄적 직장괴롭힘 법의 제정과 법제화 및 이를 지원하는 일련의 활동을 포함하는 법적 정책적 기폭제로 평가받고 있다.
나. 통합적 직장괴롭힘 추방 노력의 진전
이 법안에 대한 인식이 점차 커지면서 이에 대한 법적 영향, 조직과 개인에 대한 영향에 따라 정책의 채택, 단체협약의 추진, 근로자책임보험의 가입, 대배심보고서 채택, 아카데미 설치 등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우선 (1) 직장괴롭힘에 대한 인식의 확산으로 보다 많은 사용자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과 절차의 채택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의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의 위원회에서 카운티의 피고용인을 보호하는 직장괴롭힘 금지 정책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 단체교섭에서도 더욱 많은 노조들이 직장괴롭힘과 폭력적 감독 관행에 대한 우려의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3) 한편 산재법이 보편화되지 않은 미국에서 민간보험(근로자 책임보험: EPLI) 증서에 직장괴롭힘 문제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향후 동 법안이 연방법으로 제정된다면 직장괴롭힘과 관련된 문제들이 보험으로 보장되어 소송 논의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4) 2011년 12건이 넘는 미국 시민, 마을, 카운티에서 '직장괴롭힘으로부터의 자유 주간'을 승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2012년에는 백 개가 넘는 지자체 정부에서 성명서를 냈다. 이런 움직임은 법적 의무는 없지만 이는 직장괴롭힘 문제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법적 개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5) 지난 십년간 직장괴롭힘 문제는 법률 전문가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자연스레 이 문제는 법률 저널, 신문, 뉴스레터의 주된 기사가 됐고, 여러 법률 기관과 단체들이 빈번하게 다뤘다. 미국의 법률 아카데미는 직장괴롭힘 문제를 조직 심리학, 조직 행동, 노사 관계와 같이 학문과 교육의 주제로 인식하는데 소극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법안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비판하는 글이 법률지에 많이 게재되고 있다.
다. 직장괴롭힘 법제화에 대한 비판
동 법안에 대해 기존의 고용자유의 원리의 원칙적 침해, 직장괴롭힘에 따른 본질적인 근로자 인권침해의 미흡 등 다양한 평가가 있다.
우선 고용자유 원리 침해와 관련해서는, '괴롭힘'에 대한 정의의 모호성 및 사용자의 무한책임성에 대해 사용자의 사업상 자유에 대한 개입과 제한을 우려한다. 모호한 법안은 영세 중소기업의 사업주를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나아가 사용자에게 모호한 의무를 지우는 이러한 유형의 법들이 임의고용의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들은 직장괴롭힘 금지법은 결과적으로 해고당한 모든 근로자들이 해고한 사용자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단지 사용자의 우려로 그치지 않고 정부도 직장괴롭힘 금지법 제정의 파장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건강일터법안이 통과되면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적정한 정책을 세우지 못하는 사용자에게 엄청난 법적 책임을 지우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법안은 근로자에 대한 인권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광범위한 현상을 규율하기 위해 기존의 희롱이나 정신적 손해에 대한 법리를 수용해 기존 법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답습하고 있다. 즉, 가해자 행위의 정도, 괴롭힘 대상자의 손해, 이에 대한 입증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기준을 달성하기 힘들고, 가해자의 의도를 입증하거나 반복성을 요구하는 법안의 요건도 괴롭힘의 실태를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직장괴롭힘의 실태에 비추어 동 행위를 정면으로 규율하여야 하며, 근로자의 인권차원에서 권리로 인정하는 적극적 보호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한다.
4. 법제화에의 시사점
미국의 직장괴롭힘의 확산배경은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체제 개편, 국제적 경쟁격화에 따른 기업의 성과주의의 강화, 근로자 구성의 다양화와 비정규직의 확대, 노동조합의 저하에 따른 근로자 교섭력의 약화 등으로 우리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닮았다. 미국의 고용자유의 원리는 지난 1960년대 이후 고용관련 입법의 진전과 판례법리의 형성으로 고용차별 및 희롱 등의 영역에서 근로자 보호측면의 엄격한 법리형성으로 진전되어왔으나, 새로운 형태인 직장괴롭힘 분쟁은 기존의 법리로 규율하는데 한계가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입법적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도 우리와 유사하다.
건강일터법안은 '집단적' 성격을 강조하는 왕따 개념(Mobbing)이나 성희롱에서의 희롱(Harassment)의 개념과 구분해 근로자의 Well-being에 대척점에 있는 적대적 근로환경의 개선을 모색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의 예방과 피해자 구제 및 가해자 징계 등에 대한 입법적 해결을 제시한 노력은 관련 전문가들의 협력을 통한 '입법운동' 그리고 관련 정책의 채택, 단체교섭, 사법부의 보고서 채택, 아카데미 설치 등 통합적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런 통합적 노력은 입법 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실천 활동의 추진과 아울러 입법적 성과까지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입법 절차 면에서 민간주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직장괴롭힘으로 인한 피재근로자는 민법상 손해배상법, 고용보호법상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 관련 법제, 비정규직 보호 관련 법률, 산업재해 및 안전 관련 법률,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 등에 대한 노사관계관련 규율 법제, 기타 개인정보보호법, 공익제보자보호법 등에 근거해 구제를 요청할 수는 있을 것이다.
기존의 산업재해 보호법리에 의해 직장괴롭힘에 대한 정신질환을 산업재해에 의한 질환으로 인정받거나, 공익제보자가 괴롭힘의 일환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해당 법률 위반의 입증을 통해 구제를 요청하는 등의 방법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직장괴롭힘을 효과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법리가 체계적으로 형성되지는 않은 채 의원입법으로 입법안이 수차례 제출한 바 있다.
해당 입법안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입법례와 유사한 형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용자에 대한 광범위한 의무조항을 신설하고, 벌금과 같은 형벌을 부과하는 입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해당 발의에 따른 체계적 논의가 보다 풍부하게 전개돼야 할 것이며, 입법과 아울러 당사자들에 의한 민간의 실천노력에 의해 세밀하게 검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모호하고 방대한 '직장괴롭힘'이라는 영역을 법제화하는 데 따른 비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입법의 목적이 반드시 그에 걸맞은 정의 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 노동의 핵심 이슈인 직장괴롭힘, 주장의 일방적 관철이라는 방식으로 답을 찾기 어렵다. 행복한 일터를 통해 생산성을 증진하고 4차 혁명기에 지속가능하기 위한 노사정의 '협력'이 절실한 아젠다가 바로 직장괴롭힘이기 때문이다. 통합적 실행노력이 어우러지는 협력적 법제화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