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9 16:16
문강분 행복한 일 노무법인·연구소 대표. (사진=심은혜 기자)
[우먼타임스 신동훈·심은혜 기자] 올해는 미투운동, 간호사 '태움', 홍대 몰카사건 항의 집회 등으로 유난히 사회적 갈등과 분쟁이 많았던 한 해로 기억될 지 모르겠다.
갈등과 분쟁은 흔히 법원 소송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적 분쟁해결(Altnernative Dipute Resolution. 이하 ADR)'이란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행복한 일 노무법인은 법원 소송 위주의
국내 분쟁 해결 방식에 새로운 관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ADR은 분쟁이 발생하기 전 단계인 갈등 상황에 주목해 사법적 판단 이외의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지난 5일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서촌의 '행복한 일 노무법인·연구소' 사무실에서 문강분 대표의 얘기를 들어봤다.
노무법인 대표이신데 법학박사도 취득하시고 유학도 다녀오신데다 '대안적 분쟁해결'이란 업무도 특별한 것 같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인생스토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85학번입니다. 저 역시 대부분의 80년대 학번이 겪는 혼란과 방황의 시기를 거쳤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여간 봉제공장에서 시다와 미싱사 일을 했습니다만,
노동현장에서 목격했던 가난과 열악한 환경, 성적 질곡이 감당하기 힘들었죠. 도망치듯 뛰어나와 혼란기를 겪던 중, 우연히 공인노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장 생활에서 겪었던 문제들에 대해 노동법은 전혀 다른 언어로 분명하게 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공부에 ‘맛’을 들이게 되었죠. 방송대 법학과에 편입하며
시작한 공부가 결국은 석·박사과정에 로스쿨 유학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운 좋게 1993년 제 4회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해 현재까지 노동전문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는 노무 제도가 안착하기 전이었는데 노무사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처음부터 ‘사무소’가 아닌 ‘노무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나중에는 ‘노사전문가 WE“라는 전문지를 창간하기도 했지요.
노무법인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편집장이자 기자, 영업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하면서 열정을 불살랐어요. 90년대 중반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출범했는데,
이때 노사정을 만나면서 노동계 ’마당발‘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노사정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며, 정책과 노사관계 분야에서 '노동운동의 역학'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단법인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활동을 하면서는 성희롱과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고통받는 여성근로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주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률적 지원으로 실질적인 구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직장을 잃고 더 고통스러하는 모습들을 보며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차에 '분쟁해결' 분야를 알게됐습니다. 내친김에 20년 직업인생에 쉼표를 찍고,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분쟁해결로 유명한
페퍼다인대학교 로스쿨의 분쟁해결 프로그램(Straus Institute for Dispute Resolution)에서 협상, 조정, 중재 등 ADR 제도와 '분쟁해결시스템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공부한 후
귀국해 현재까지 이 분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일반적인 의미의 노무사 업무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이 달 20일이면 행복한 일 노무법인&연구소가 문을 연지 꼭 1년이 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온 사업과 활동에 대한 소개와 소회를 부탁드립니다.
“귀국하면서 한국에서 ADR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궁리해보았는데, 결국 노무사 업무야 말로 기업현장의 노동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주력하는 것은 성희롱과 같은 기업 현장에 큰 충격을 주는 갈등을 분쟁화하지 않고 기업내 해결로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내 분쟁해결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쟁 예방'입니다.
분쟁 예방은 상담, 협상, 조정의 역량이 많이 필요한 분야인데요, 그간 저의 학업과 경험을 총 집결하여 체계화하는 중입니다. 기존에 몸담았던 대형 노무법인에선 저의 비젼을 실현하는데
한계가 있어 독립적인 서비스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UN과 OECD 등의 평가에서도 심각하게 사회적 연대와 지지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노동시장의 격차와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직장의 괴롭힘도 만연해 있는 편이고요.
2015년 말 전남대에서 열린 '괴롭힘 심포지엄'에서 미국의 분쟁해결에 대해 발표를 의뢰받고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며 일의 목적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결국 괴롭힘을 넘어
"존중의 일터가 되어야 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아주 분명한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행복한 일'이란 이름도 이때 정했습니다.
법률서비스는 사건의 승패에 주목하지만, 분쟁해결서비스는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교육과 컨설팅으로 이어지는 사건처리에 주목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와 실무가
연계되어야 하기에, 연구소와 노무법인을 통합하는 전문회사를 오픈했습니다.
연구소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국가단위에서 직장괴롭힘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사업입니다. 정기적인 포럼을 개최하고 아카데미를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는 한편,
노동부 과제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제가 제시한 내용이 포함된 국무총리실 대책안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노무법인의 경우, 광범위한 사내하청 문제에 대한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적법성, 실질적인 현장의 차별문화 개선, 하청회사 근로자들의 지위 개선 등을 염두에 두면서 근원적인 문제까지
개선하기 위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20여 년을 함께 한 고객들이 저의 비전을 이해해주어 이러한 서비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한 회사를 책임지는 대표 위치에 올라보니 부담감과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난 1년은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특히, 뜻을 함께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회사와 연구소 이름을 '행복한 일'로 정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행복한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덴마크에 행복 연구소(Happiness Research Institute)라는 연구기관이 있습니다. 이 연구소에선 '가장 행복한 직장으로 꼽히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에 만족을 느끼는지'를
연구해 지표로 만들어 발표하는데요,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요즘 우리 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나, 급여, 연봉 같은 요소들은 지표 가운데 하위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가장 높은 만족도를 느끼게 하는 지표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목표(Goal)'입니다. 최근에 제가 새로 채용한 직원이 있습니다. 면접을 보며 신문방송학과에서
아랍문화과로 전공을 바꾼 이유를 물었더니, 팔레스타인 난민를 다룬 다큐를 보고 그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전공을 바꿨다고 하더군요. 다큐를 보고 전공을 바꿀 수 있는
그 열정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열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목표가 확고한 데서 나오는 것이죠. 이런 직원이라면 함께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겠다 싶어 채용했습니다.
또 하나의 지표는 '마스터리(mastery)'였습니다. 즉, 어떤 일을 숙달되게 잘하는 것이죠.
최근 회자되고 있는 '워라밸'을 어떻게 봐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온라인 강의 서비스인 테드(TED)에서 어떤 호주사람이 나와 "워라밸? 집어치워라! 그런 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얘기인 즉 "일은 집중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워라밸을 하고 싶으면 급여를 포기하고 놀면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상당부분 동의합니다.
사실, 워라밸의 목표는 '워크'가 아니라 '라이프'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서 '워크'를 한다는 개념인데, 그럴 경우 '워크'는 '루틴(routine)'한 일이 되어야겠죠.
워라밸이 목표라면, 아무래도 새로운 가치를 개발하거나 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종류의 일을 하기는 어려울테니까요.
좋아서 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노동자로서의 존엄도 있는 것이죠. 이제는 사람보다 기계가 일을 더 잘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일상적인 일이라면,
쉬지도 먹지도 않고 감정도 없이 일하는 로봇이 더 잘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반면, 인간은 창조적인 노동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창조적이려면 행복하고 즐겁게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것, 창조적인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일과 행복한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문강분 대표가 대안적 분쟁해결(Altnernative Dipute Resolution. 이하 ADR)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심은혜 기자)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분야인 대안적 분쟁해결에 초점을 맞춘 연구와 활동을 중점적으로 펼치시는 것으로 압니다. '대안적 분쟁해결'의 소개와 국내 노동환경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스물 여덟에 노무사 자격증을 따고 대형 노무법인에서 20여 년간 기업 노동 현장에서 여러 경험들을 했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닿아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페퍼다인대학교 로스쿨의 분쟁해결 프로그램에서 공부했습니다. 분쟁해결 분야에서 손꼽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안적 분쟁해결'을 처음 접하며 ADR 분야에 눈을 떴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시립대, 아주대, 단국대 대학원에서 갈등해결 관련 강의를 하며 국내 기업 환경과 ADR을 접목시키는 방안을 구체화할 수 있었어요.
'대안적 분쟁해결'은 사법적 분쟁 해결의 '대안', 곧 비사법적인 방법을 통한 해결을 의미합니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결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사후적인 분쟁 해결보다는 사전적 분쟁 예방에 초점을 맞춥니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어떤 분쟁이 발생하면, 제 3자, 곧 분쟁해결의 최고 기관인 법원을 통해 해결하게 됩니다. 법원에 의한 사법적 판단은 신뢰와 권위를 갖춘 공적 기관을 통해 분쟁을 해결한다 점에서, 분명히 강력하면서도 적절한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법원을 통한 해결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분쟁 당사자들간에 서로 소통하기 보다는 제 3자인 판사를 설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당사자들은 상처를 받고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이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대안적 분쟁해결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나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당사자들이 각자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게만 만들어도 절반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대안적 해결과 사법적 해결을 상충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기 쉬운데요, 이 둘은 서로 상호보완적입니다. 사법적 판단이 매우 엄격해야 대안적 해결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자칫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는' 사법적 해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안적 해결을 찾게 되기 때문이죠.
대안적 분쟁해결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신속한 종결에 있습니다. 분쟁이 길어지면 상처는 깊어지고 관계는 망가지게 마련인데, 당사자간의 해결을 통한 빠른 처리는 이를 방지해줍니다. 하지만, 당사자들끼리의 비공개 합의만으로 종결되어선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가니 사건'과 같이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건이나 형사사건의 경우엔 반드시 사법적 판단과 응분한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경우 “판결보다 조정이 낫다”는 명제는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에선 ADR의 A를 'alternative' 보다는 'appropriate' 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판결과 조정 중재 등 수많은 분쟁해결 방법 중 그 분쟁에 가장 적합한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으로 보는 거죠. 저는 이 관점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제가 서울 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있으면서 법원까지 오는 사건들을 보다보면, 초기에 해결되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사전에 불법성을 진단하고 이를 통해 자율적,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행복한 일 연구소는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시스템 설계자'를 지향합니다. 각 분쟁 상황에 맞춰 적절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이달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가 도입됐습니다. 이를 놓고 찬성과 반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기도 했는데요, 도입에 따라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 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선 어떤 변화들을 예상하고 계신지요?
"우리 시대에서 중요시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민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조직의 시민성'도 중요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내가 열심히 하고 내가 책임지는, 그런 구조가 되면 굳이 일한 것에 대한 체크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경우 사용자들 처벌한다는데,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은 근로자 스스로도 자신의 일을 귀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도덕입니다. 근로자의 책임과 자율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얘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노동생산성이 가장 낮다고 합니다. 근무 시간은 긴데 비해 비효율적으로 일하기 때문이죠. 주어진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도 바꾸고 교육 제도도 바뀌어야합니다. "
영화 〈오베라는 남자〉(왼쪽)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포스터 이미지.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요, 한 포럼에서 "한국의 지시적·수직적 문화로 미래산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율적인 HR시스템을 통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신 바 있습니다. ‘자율적인 HR시스템’이란 어떤 의미인지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은 로봇이 하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만 남는 시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인간의 노동은 로봇이 할 수 없는,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행복하게 하는 데서 가치를 찾으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직적 조직문화에선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기업들, 조직들, 단체들을 이끌고 있는 임원, 간부급들은 노동 자체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그 분들과 전쟁을 직접 겪었거나 전쟁 직후의 어려운 시절을 버텨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분들입니다. 바로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배우 황정민 씨가 연기했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맨몸으로 부딪히며 열심히 살고, 성실하고 일하고, 불이 나면 이웃을 구하려 뛰어 들고. 그 시대의 미덕을 모두 갖춘 분들이죠. 그 분들에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은, 자신들이 노동한 가치를 증명해주는 증거인 셈입니다.
한편으로 그 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고집불통의 '꼰대' 취급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제시장〉 주인공의 현재 모습은 영화 〈오베라는 남자〉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뉴캐슬을 배경으로 한 중년 남자를 통해 복지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오베라는 남자〉는 우리나이로 환갑 나이인 고집불통 스웨덴 중년남자가 삶의 반전을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편집자 주)
반면, 젊은이들은 일을 열심히 해도 내가 가질 수 있는게 없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노동의 열정'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대기업 근처에도 못가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자신을 반겨주는 직장들이 없는 현실에서, 노동은 더이상 가치가 없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일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죠.
우리 나라 기업들의 수직적 문화에선 일이 진행하기 보다는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 보입니다. 효율적인 업무진행이 어려운 이유죠. 수직적 구조의 비효율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텐데, 합리적 조직문화와 시스템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원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훌륭한 성과를 냈다면, 그에 걸맞는 실질적이고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가능해야합니다."
25년간 국내 기업들의 노사관계를 지원해오시면서 기업 노무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소개하시고 싶은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 제조회사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직원간 성추행으로 내부 징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회사의 의뢰를 받아 외부 전문가로서 참석하게 되었는데요, 가해자는 여성 점장, 피해자는 남성 점원이었습니다. 여성 점장은 다른 업계에서 일하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상황이었죠. 둘이 함께 짐을 나르다 사건이 벌어졌는데 여성 점장은 해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여성 점장이 입사전 일했던 업계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간에 조직문화도 달랐고, 내부승진 위주였던 회사에 여성 점장이 첫 외부 영입 케이스로 입사하며 조직내 알력도 있었습니다. 의도적인 성추행이라기 보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점도 있었고요. 처음엔 단순한 성추행 사건으로 보였지만, 당사자와 목격자의 얘기를 듣다보니 문제의 본질은 직장내 텃세와 괴롭힘에 있었습니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여성 점장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장내 괴롭힘을 막지못한 경영진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회사는 여성 점장을 징계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들의 동의하에 스스로 해결하게끔 만들었고, 당사자들끼리 합의서를 쓰고 잘 마무리 됐죠.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이 많았지만, 의도했던 대로 잘 해결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고객사로부터 신뢰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유화, 1630년 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이크스미술관 소장.
만약, 이 사건이 겉으로 보이는 대로 성추행 사건으로 처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여성 점장은 억울하게 해고되고, 법정에선 날선 진실 공방이 오가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깊은 상처를 얻고 서로 되돌릴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겠죠. 대안적 분쟁해결이 왜 필요한 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라는 그림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이 그림은 그냥 보기엔 매우 외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면 얘기가 달라지죠.
사연은 이렇습니다. 로마시대에 시몬이란 사람이 왕의 노여움을 받아 사형수가 되었는데,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마침 출산한지 얼마 안된 시몬의 딸 페로가 면회왔다가, 아사(餓死) 직전의 아버지를 보고 자신의 젖을 물려 간신히 죽음만은 면하게 했죠. 간수를 통해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왕이 딸의 효심에 감동해 아버지를 풀어줬다는 얘기입니다.
어떠세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그림을 통해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문강분 대표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법학박사(노동법)
-Pepperdine Univ. LL.M.in dispute resolution(분쟁해결학)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갈등해결 조정론)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 /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위원 역임
-(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회장 역임
저작권자 © 우먼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원문 :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