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불안한 사회 분위기, 직장 내 괴롭힘 심화시켜”
· 오경진 기자
· 2018-12-26 21:44
노무법인 ‘행복한 일 연구소’ 문강분 대표
양진호 폭행 때 못 말리던 사람들 더 충격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괴롭힘에 취약
‘괴롭힘 방지법’ 근로기준법 명시 큰 성과
“누구나 주인으로 대우받는 사회로 가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 폭행’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직원의 뺨을 후려치는 양 회장에게 모든 관심이 쏠릴 때 ‘직장 내 괴롭힘’ 전문가 문강분(51) 노무법인 ‘행복한 일 연구소’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26일 서울 종로구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문 대표는 “양 회장이 직원을 때리는 동안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사람들이 눈에 더 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중 누구라도 나서서 양 회장을 말리지 못할 만큼 조직이 경직됐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틀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직장 내 괴롭힘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규직으로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누가 괴롭힌다고 회사를 관두기엔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이 꾹 참는 게 반복되다 보니 양 회장 같은 ‘괴물’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직장 내 괴롭힘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한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를 근로기준법에 담았다.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에 ‘정서적 고통’이라는 표현을 빼는 등 일부 문장을 수정했지만 모호성을 완벽하게 지우지는 못했다. 문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이란 표현을 근로기준법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성과”라면서 “고용노동부가 그동안 쌓인 법리 해석이나 외국 사례를 참조해 사업장에서 참고할 가이드라인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최소한’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은 수많은 양진호를 법 하나로 솎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 대표는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무심코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항상 성찰해야 한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이후의 과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 사회에서 확실한 한 가지가 바로 ‘협력’의 중요성입니다. 타인을 짓눌러야 내가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누군가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사회구조가 이어진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각자의 노동이 소중하다는 것을 서로 존중할 때 직장 내 괴롭힘은 자연히 없어질 것입니다.”글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