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없는 사업장을 위한 노무관리ABC
글 문강분 행복한일노무법인·연구소 대표(법학박사)
몇 해 전 CEO 대상 노동 과목을 개설을 위한 수요를 조사하면서, '노동'이라는 '노'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난다는 격한 반응에 놀란 적이 있다(결국 노동과목 개설은 취소되었다). 경쟁적 경영환경 속에서 매출이나 이익과 같은 ’숫자‘를 관리하면서 피 말리는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서 회사로 돌아오면 한숨만 나온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노동기준이 너무 많고, 특히 채용, 퇴직, 인사와 같은 기본적 경영활동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해 주지 않아 범법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노동운동 출신 경영자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보면 사용자의 의례적 불만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듯하다. 사실 준법의식이 높고 선량한 사용자에게도
노동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하에서는 사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무에서 빈번하게 문제 되는 몇 가지 사안을 중심으로 노무관리의 핵심 쟁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A 출근 안 했으니, 취소 가능?
채용 절차 중 본 채용 상당 기간 전에 채용할 자를 미리 선정하여 두는 ‘채용내정’이 실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를 둘러싸고 많은 분쟁들이 제기되고 있다. 채용내용은 일정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채용을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의 합의가 포함된 근로계약에 해당한다. 채용내정은 일률적으로 법적 성격을 규명하기 어려우나 채용내용의 의사표시가 근로계약의 성립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취업규칙·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대기업이 대학 졸업예정자를 상대로 신입사원을 모집한 것은 근로계약 청약의 유인이고, 요구하는 절차에 신입사원이 응한 것은 근로계약의 청약에 해당하므로, 서류전형, 면접 절차 및 신체검사를 거친 후 졸업을 조건으로 최종 합격 통지한 경우 근로계약 승낙의 의사표시로 본다는 판례(대법 2002.12.10,2000다25910)가 대표적이다. 채용공고 후 근로자가 취업규칙 등에 정한 소정 절차를 모두 거쳐 최종 합격 통보를 한 경우 채용내정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일정 기간 대기토록 한 후 합격을 취소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채용을 하기로 하여 절차를 마쳤다면 아직 취업 전이라 하더라도 근로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방적으로 고용종료 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B 회사가 필요하면 전보 조치?
사용자가 근로자의 업무상 필요한 범위 내에서 근무 장소와 업무 내용을 변경하는 전배, 전보, 전근, 전직 등과 같은 인사 조치를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
법원이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한 사례로는 업무능률의 증진, 직장 질서의 유지나 회복, 근로자 간의 인화 등의 사정, 노동력 재배치를 통한 근로의욕 증대, 인사교류를 통한 업무의 원활화 및 경영능률증진, 다른 근로자와의 형평성이나 대체 가능성, 정기적인 인사명령시기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에서 근로자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나 근무 장소를 특별히 정한 경우라면 근로자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노동위원회는 판단 시 근로계약 등에 근로 내용과 근무 장소의 특정 여부, 인사명령의 업무상 필요성으로 든 사실이 존재하는지, 인사명령 사유가 타당한지를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과거 노무 이슈는 해고나 징계 단계에서 많은 문제가 되었지만, 3요'지금요, 왜요, 제가요?’ 세대에겐 오히려 업무 부여나 배치전환과 같은 일상적 인사 조치에 대한 갈등이 빈번하게 제기되고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해당 사업장의 실태에 따라 인사 조치가 필요한 경우라면 근로계약과 취업규칙상 근거 규정을 명확히 하여 분쟁을 예방하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C 사직서 냈는데 해고라고?
과거 한 기업에 입사하여 정년까지 수십 년을 일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제 이직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사용자의 의사로 고용이 종료되는 경우 ‘해고’로서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근로자에게는 퇴직의 자유가 보장되고(강제 근로 금지) 대부분은 사직서 제출로 의사를 표시하게 된다. 그런데 분명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한 직원이 부당해고 당했다며 구제신청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직의사표시의 효력을 둘러싸고 사용자는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사직의 의사표시를 했다고 주장하나, 근로자는 사직의 의사표시가 진의가 아니었다거나 강요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문제 된다. 여기서 쟁점은 ‘진의로 사직서를 제출했는가’이다.
여기서 진의는 근로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으로 바라는 사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의사표시로서, 향후 징계 조치나 불이익 가능성, 경영상 여건, 사직 시 회사가 제공하는 혜택, 전직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그 당시에는 사직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사직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를 의미한다.
사용자가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금체불 등을 이유로 모든 연구소 직원으로부터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받거나 회사의 경영방침에 따라 사직원을 제출하고 퇴직 처리를 한 후 즉시 재입사하는 형식을 취한 경우, 사직의 의사가 없는 근로자에게 회사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희망퇴직을 신청하게 하여 수리한 경우, 퇴직의 의사가 전혀 없는 근로자에게 반복적으로 퇴직을 종용하며 사직서를 제출하게 한 경우는 진의를 인정하지 않은 대표적 사례다. 사직의 진의 여부가 문제되지 않도록, 사직 절차를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 퇴직자의 고충을 제대로 청취할 필요가 있다.
출처 : <조정과 심판> 여름호